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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이상찬 병원장] 국제신문 메디칼럼 - 루바토의 자유는 단단한 뿌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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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병원 | 2025-12-29 | 166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같은 곡이라도 매회 다른 해석으로 연주한다. 그는 그 자유로움의 본질을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가 말한 루바토(Rubato)에서 찾는다. 리스트는 루바토를
나무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는 고귀하고 강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지는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잎은 바람과 함께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것이 루바토다.”

‘훔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루바토는 작곡가가 제시한 근본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가장 자유롭게 박자를 흔드는 음악적 표현이다.

말하자면 박자를 자유롭게 늘리거나 줄이며 연주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시간을 훔친다’는 낭만적인 해석이 담겼다. 이는 단순한 연주 기법을 넘어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생각의 중심이 단단히 잡힌 사람일수록 오히려 유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지닌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에 해당되는 인간의 중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 부모와 가족, 집안의 어른을 통해 생각의 뿌리를 내린다. 가정교육과
가훈은 삶의 첫 뿌리가 되고, 성장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줄기가 형성된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교류는 자신에게 맞는 줄기를 세우는 중요한
시기이며, 이후 사회에 나가 선배와 스승을 만나면서 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단단해 진다. 이 과정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라는 바람을 견디면서 나무는 더욱 강해진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 지식만으로는 한 사람의 의사가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겪는 책임과 경험, 그리고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의사가
된다. 이렇게 성장한 의사들은 다시 자신의 제자에게 지식과 경험, 그리고 철학을 전하며 진료의 연속성을 이어왔다. 이러한 축적과 계승의 결과가 바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핵가족화와 중·고등학교의 평준화로 말미암아 인간의 뿌리와 줄기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가정의 가치관과 학교의 전통은 흐려졌다. 대학병원에서도 후학을
가리키며 함께 성장하기 보다 PA지원간호사와 진료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의 연속성은 위협받고 있다.

최근 의료혼란을 겪으며 드러난 교수와 레지던트 간의 단절은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의료행위의 결과에 대해 의사면허를 취소시키는 형사처벌과 수십억대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원의 판결은 필수의료과를 더욱 기피하게 만든다.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가
없는 운전자에게 교통사고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가한다면 누가 운전대를 잡겠는가. 마찬가지로 생명을 살리려는 의사에게 치료 결과만으로 형사처벌과 막대한 금전적 책임을 묻는
사회에서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필수의료과를 선택하겠는가. 그 결과 지금도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이른바 ‘뺑뺑이’ 현상이 반복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하루아침에 탄생한 존재가 아니다. 가정에서 내린 뿌리와 줄기를 바탕으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 오늘의 임윤찬이 만들어졌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과 학교에서 형성된 뿌리와 줄기를 기반으로 선배와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며 한사람의 의사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제는 ChatGPT에 질문하면 환자가 자신의 질환에 대해 의사보다도 더 많이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핵가족 환경에서 혼자 자라고 평준화된 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자란
세대는 이전과 다른 인식과 가치관을 지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피아니스트 임윤찬처럼 루바토를 연주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같은 생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경계에 머물며, 미래 문명의 인프라를 설계하고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